정교한 마름질이 SW역량 결정한다

한 사회의 기술 성숙도를 평가하는 나만의 척도가 있다. 쉽게 눈에 띄면서, 사회 수준이 오차 없이 투사되는 개체다. 바로 ‘문’이다. 타국 출장지 숙소로 들어가면서 잠깐 스치는 첫 문에서 방문국 과학기술과 공학 수준을 읽는다.

문은 예술과 기술의 겸허한 융합물이다. 문짝과 문틀 간 이격, 견고함 등은 공학의 산물이다. 미려함, 색상은 예술의 영역이다. 안전고리와 문손잡이 디자인은 공학과 예술의 융합이다. 사회의 성숙도는 휘황찬란한 청담동 명품거리가 아니라 재래시장 노점이 결정한다. 우주·항공이 기술 발전의 지표라면 문은 기술 성숙의 지표다. 호텔 객실 인테리어에서 침구, 조명, 심지어 화장실 일회용품까지 모두 확인한 후 마지막에 ‘문’ 차례다. 잘 만들어도 티가 안 나고, 엉성해도 불만이 없다. 개선 항목 중 제일 마지막에 있기에 ‘문’ 완성도는 사회의 공학, 과학, 예술의 벌거벗은 지표다.

IT 심장부인 실리콘밸리의 호텔들은 어떤가? 여기저기 흠이 많다. 문고리와 맞닿은 벽 부분은 움푹 들어가 있다. 이 지역 호텔 객실 문짝과 문틀들은 상처가 아물 시간이 없었다. 고속 성장의 엉성한 흔적이다. 유럽의 문·문틀과 문짝은 이격이 전혀 없다. 공기도 안 통할 것 같다. 충돌로 상처가 날 곳은 모두 완충장치와 철판을 덧대어 놓았다. 손잡이 모양, 색상, 재질이 현란하다. 헐거움이란 없다. 유럽 예술가들은 문고리 디자인을 해서 먹고살았나 보다. 프랑스·독일은 물론 EU 골칫덩어리인 스페인까지 모두 마찬가지다.

얼마 전 폴란드 작은 도시를 다녀왔다. 우리에게 폴란드는 독일과 러시아의 침공으로 고초를 겪은 애매한 유럽 국가다. 하지만 폴란드 어느 호텔 객실 ‘문’에 투영된 그네들 사회 수준은 초일류다. 코페르니쿠스, 바그너, 쇼팽 등 오랜 세월 켜켜이 쌓여온 음악, 미술, 철학의 성숙함이 그대로 ‘문’에 투사되어 있다.

우리나라? 중·고등학교 교실 문은 귀퉁이가 온전한 것이 거의 없다.

최첨단 세콤으로 무장한 건물들도, 결국은 쇠사슬과 자물통으로 문고리를 걸어잠근다. 반도체, 자동차가 우리 기술의 공항 패션이라면, 귀퉁이가 떨어지고 손잡이가 헐렁한 엉성한 문이 대한민국 사회의 기술 ‘생얼’이며 제도와 프로세스 수준이다. 12월 초다. 대기업 인사 시즌이다. 올해 테마는 SW 역량 강화다. 삼성전자, LG전자 모두 SW 개발 조직을 확대 개편하고 사장급·부사장급 인력을 전진 배치하였다. SK는 SW 전문가를 사장급 기술임원으로 영입했다.

정부는 ‘SW 중심사회’라는 기치 아래 역량을 집중한 지 2년이다. 정부, 기업할 것 없이 SW에 사활을 걸었다. 불행히도 정작 SW 개발자가 현장에서 느끼는 체감온도는 여전히 영하 20도다.

우리는 자본과 인력을 대량 투입해 단시간에 규모의 경제로 승부를 보는 요소집약형 산업 양성이 주특기다.

SW는 장기간 끈질긴 투자, 노하우 축적과 장인과 같은 전문인력 양성이 핵심이다. 제조업 양성 프로세스에 SW산업을 얹으니 붕어빵 기계에 해물파전 반죽을 밀어넣는 셈이다.

재료 값은 엄청 들고, 결과물은 엉성하다. 지금부터 SW 경쟁력 제고는 ‘문’을 다듬는 시각에서 접근해야 한다. 가방 안쪽 바늘 한 땀으로 명품과 짝퉁이 갈리듯, 숨은 독소 조항 하나가 전체 정부 SW정책을 짝퉁화시킬 수 있다.

세세한 규정과 프로세스들을 살피고 다듬어야 한다. 화려한 정책보다 성숙을 위한 정교한 마름질이 필요하다. ‘문’을 다듬는 것처럼 말이다. 나머지는 시장에 맡길 일이다. 첫 꼭지로, 정부 과제 제안서 예산 양식에 기자재 항목 옆에 SW 항목을 추가할 것을 제안해 본다.

[원유집 한양대 컴퓨터공학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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