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문이 죽어야 소프트웨어가 산다

소프트웨어는 창조경제 실현을 위한 핵심 도구이자 국가 경쟁력의 근간이다. 박근혜정부의 지원이 전폭적이다.소프트웨어 경쟁력 제고에 대학의 시대적 소임이 막중함에도 불구하고 인력 양성에서도, 선도기술 개발에서도 대학들은 그 존재감을 찾기 어렵다. SCI(톰슨사이언티픽이라는 미국 회사가 관리하는 학술지 목록) 논문 개수로 연구 역량을 평가하는 성과지표가 소프트웨어 학계의 발목을 단단히 틀어잡고 있기 때문이다.

SCI 논문 기준으로는 소프트웨어 분야 미국 내 50위권 대학(US News and World Report 기준)이 최고 대학이고, MIT나 스탠퍼드가 우리나라 중위권 대학 정도가 된다. 소프트웨어 분야에 SCI 논문을 성과지표로 적용하는 것은 축구선수의 연봉을 선수의 체중으로 결정하는 것과 진배없다. 왜곡된 성과지표로 인해 발생하는 사회적 비용이 실로 심각하다.

첫째, 교육의 부실이다. 성과지표가 결국 궁극적으로 대학의 소프트웨어 교육 수준을 결정하기 때문이다. 엉성하게 졸업하는 소프트웨어 전공 학생들을 재교육하기 위해 기업들이 자체 교육시스템을 운영하고 있다. 엄청난 비용이 기업에 전가되고 있다.

둘째, 산학 협력 선순환 시스템의 붕괴다. 대학은 기업들이 필요로 하는 선도기술을 선행개발하는 디지털 생태계의 매우 중요한 고리이다. 테크니온 이스라엘 공대, 핀란드의 오울루대학 등 이상적인 산학 협력 모델들이 있다. 정부를 비롯한 각종 단체에서 열심히 이들을 벤치마킹하지만 정작 대학의 핵심 두뇌들은 산업 발전에 공헌할 수 있는 기술 개발에 시간을 할애할 여유가 없다. 논문 실적을 채우느라 날밤을 새우기 때문이다. 대학의 구성원은 연구를 위해 혼신의 힘을 다하고 있음에도 대학의 교육시스템은 부실하고 정작 기업이 필요로 하는 연구 결과는 없다. 시스템이 총체적으로 작동을 못하고 있다.

저널만을 고집하는 대학 성과지표 때문에 소프트웨어 분야의 주옥같은 연구 결과들이 세계 무대에서 제때 주목받지 못한 채 사장되고 있다. 엄청난 국가적 낭비다.

대한민국의 극히 부족한 자원과 제한된 숫자의 두뇌들이 효율적으로 기동할 수 있도록 모든 시스템이 정렬돼야 하는 판국에 소프트웨어 학문 분야는 왜곡된 지표로 전체가 옭아매져 있다. 국내에서 배출되는 유능한 엔지니어들이 세계 무대에서 활동할 수 있는 기회가 차단되고 있다. 그들의 눈부신 연구 결과를 세계 무대에 알릴 기회를 놓치기 때문이다.

해외에서 활약하는 유능한 학자들을 국내에 유치할 수도 없다. 대한민국 기준으로는 평균이 채 안되는 능력 없는 학자가 되기 때문이다. 세계적인 유수 연구기관과의 연구 협력이 불가능하다. 우리나라 교수들은 연구 결과를 `저널`에 실어야 승진도 하고 학교로부터 인정받는 반면 파트너 교수들은 연구 결과를 우수한 학술대회에서 발표하고 싶어하기 때문이다.

소프트웨어 분야에서 대학의 소중한 자원들이 왜곡된 성과지표에 골병이 들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대학에 소프트웨어 경쟁력 제고를 논하는 것은 손발 묶인 채 마라톤 대회에 출전해서 월계관을 가져오라는 것이나 다름없다.

창조경제를 위한 소프트웨어. 일당백의 전사도 있고, 갈고닦은 무기도 준비되어 있다. 더 이상 머뭇거릴 시간이 없다. 이들이 나가 전쟁에서 승리할 수 있도록 `제대로 된` 군령을 내리도록 하라. 신명난 한판을 멋지게 벌일 수 있도록.

[원유집 한양대 컴퓨터공학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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